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율리안 민츠 (문단 편집) == 슈퍼행운아(?) == 율리안 민츠는 그리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고[*반론 율리안은 동맹 건국에 공헌을 한 민츠 가문 출신이며 율리안의 할머니가 이에 대한 비뚤어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율리안의 집안은 부자나 권력이 있지는 않을지 몰라도 동맹에서의 명예나 명망만큼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작중에서 율리안을 타인과 엮은 부분에서는 '양 웬리의 양자' 라는 점만 강조되어 그냥 율리안의 할머니의 망상이거나 아니면 과하게 자부심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는게 장정 1만 광년에 참여한 사람은 40만명이고 살아남아 건국에 참여한 사람은 16만명이라 십수만 단위의 사람들 중 한명은 입지가 애매하지만 양 웬리는 단 한명이고 그는 동맹 역사에 있어 최고의 명장이라 할 수 있어 민츠 가문의 이미지보다 더 강렬할 것이다. 거기다 장정 1만 광년은 이미 300년 전의 먼 과거지만 양 웬리는 현재 살아있는 영웅이다.] 그나마도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고아이기 때문에 그가 단순히 배경 덕을 본 행운아라고 부르기 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래버스 법]]으로 양 웬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율리안은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갔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평범한 인물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율리안의 진급 속도를 살펴보면 우주력 796년 12월 병장 대우 [[군무원]]이 된 후 우주력 799년 2월에 중위까지 승진했고, 이후 승진이 멈추었다. 불과 2년 3개월 만에 7계급이나 승진한 셈이다. 이는 4년만에 준위~소위에서 상급대장 ~원수까지 오른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 다음가는 속도로, 13년만에 소위에서 원수까지 오른 양 웬리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훗날 [[이제르론 혁명군]]이 창설되었을 때 율리안은 불과 중위 계급으로 60만 혁명군의 사령관을 맡았다. 은영전에서 이 정도 병력을 지휘할려면 최소 중장급 장교가 지휘한다는 점에서 비상식적인 결정이다.[* 심지어 처음부터 병장 계급 격으로 입대했는데 트래버스 법으로 인해 군인 가정에 입양되었다든가 하는 이유등을 감안하더라도 병장부터 시작한데다가 회랑의 조우전 전만 해도 별다른 공적이 없는데도 승진한다. 심지어 율리안은 사관학교 출신도 아니다.(물론 사관학교 출신이라면 애초 소위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율리안의 무훈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랑의 조우전]]에서 다른 [[스파르타니안]] 파일럿들이 쓸려나갈 때 순양함 '렌바흐'와 [[발퀴레(은하영웅전설)|발퀴레]] 3기를 격추했고, 뒤이은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도 3기를 격추해서 [[에이스]]라 불릴 무훈을 쌓았다. 이후 [[페잔 점령 작전]]에서도 다른 직원들이 자기만 챙기고 도망칠 때 [[헨슬로]] 판무관을 데리고 페잔을 탈출했으며 제국군 구축함 [[하멜른 4호]]를 노획했다. 그리고 이 무훈을 인정받아 율리안은 각각 1계급씩 승진했다. 그러나 그 만큼 율리안의 진급을 빠르게 한 것은 바로 [[욥 트뤼니히트]]의 총애(?)였다. 트뤼니히트는 처음부터 율리안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구국군사회의 쿠데타]]가 진압된 직후 모습을 드러낼 때 율리안을 만났는데, 트뤼니히트는 초면인 율리안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쿠데타 진압 이후 직접 담판을 벌여 율리안을 병장 대우에서 중사 대우로 승진시켰다. 내전에서 율리안은 양 웬리를 보좌했을 뿐, 아무런 공적도 세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1년 뒤 별다른 공적 없는 율리안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세운 공적은 준위 승진에 반영되었다.]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을 시켜 소위에 서임했다. 물론 트뤼니히트의 속셈은 양 함대의 사병화를 방지하기 위해 소위 서임 및 판무관 사무소 주재무관 임명이라는 명목으로 율리안(+메르카츠)을 양 웬리에게서 떼어낸 거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사람들은 트뤼니히트가 율리안을 아낀다고 보고 그를 트뤼니히트 파로 분류했다.~~율리안이 들으면 피꺼솟할 일~~[* 실제로 율리안도 뷰코크가 사람들이 트뤼니히트 파로 본다는 말에 처음에는 "저는 양 웬리 파인데요?"라며 유머스럽게 넘어가지만 나중엔 빡쳤는지 화를 내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율리안은 전술했듯 구축함 탈취와 판무관 호위라는 실적을 올렸고, 중위에 승진했다. 그리고 승진은 이것으로 끝. 율리안은 [[버밀리온 성역 회전]] 이후부터 [[엘 파실 혁명군]]에 투신할 때까지 군을 떠났고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몇몇 장갑척탄병들을 이끌고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후 한 잔의 홍차|양 웬리가 숨겨둔 키워드]]를 입력했지만 승진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버밀리온 회전]] 이후 [[양 함대]]의 모든 이들이 승진은 커녕 군대에서 나가거나 좌천되었다. 심지어 양 웬리는 아예 정식으로 군대에서 퇴역했고, 다시 군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식 복귀가 아니라서 계급 같은 건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중위 계급에 양 웬리의 참모로 머물다가 [[양 웬리 암살사건]] 이후 율리안은 덜컥 혁명군 차기 사령관직을 제안받게 되었다. 그 이유인 즉슨 [[양 웬리]]라는 항성의 빛을 가장 잘 반사하는 사람, 다시 말해 양 웬리의 후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 같은 이유로 [[프레데리카 그린힐]]은 차기 정치지도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양 웬리]]라는 구심점을 잃은 양 함대는 해체될 수 밖에 없으니, 양 웬리의 후광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을 차기 군사지도자로 세워 집단의 붕괴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율리안은 이 시점에서 다른 사람도 끄떡일 만한 무훈이 없었다. 물론 전술했듯 율리안이 무훈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이 무훈들은 율리안 개인 플레이로만 세운 것이지 수천, 수만 척의 대함대를 지휘한 경험과 양 웬리처럼 화려한 무훈이 없었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고, 100만에 달하는 이탈자들이 이제르론을 빠져나갔다. 율리안도 이 결정에 반발하여[* 율리안은 이전부터 양 함대의 사령관이 아닌 참모로서 양 웬리를 보좌하고 싶어했다. 작중 서술에 의하면 율리안에게 양 함대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신성불가침한 자리였다고 한다.] 아텐보로를 추천했으나[* 양 웬리보다 빨리 승진했을 뿐더러 실적과 인망 모두 율리안을 능가했다.] 아텐보로가 반대하고 다른 간부들이 간곡히 설득하는 한편 프레데리카까지 거들자 군사지도자 직을 수행했다. 특혜라면 특혜지만, 당사자는 전혀 바라지도 않았던 특혜인 것이다. 이런 과정으로 올랐다 보니 율리안은 다른 사령관들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다른 간부들을 휘어잡지는 못했다.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스스로 작전을 세우고 무수히 많은 간부들을 통솔한 것과는 달리, 율리안은 스스로 결정권을 쥐면서도 다른 간부들과 끊임없이 의논하여 작전을 실행했다. 그래도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및 [[시바 성역 회전]]에서 나쁘지 않은 전술 능력을 선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